[부자동네타임즈=이현석 기자] 사임을 발표한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의 후임으로 앤디 버넘(56) 노동당 하원의원이 영국의 새 총리로 확정됐다. 노동당 대표 선출과 동시에 총리직 승계가 이뤄지면서, ‘북부의 왕(King of the North)’으로 불리던 버넘은 7월20일(현지시간) 다우닝가 10번지(총리 관저)에 입성한다.
영국 집권 노동당은 17일 버넘을 새 당 대표로 선출했다고 밝혔다. 영국은 집권당 대표가 총리를 맡는 의원내각제 국가인 만큼 버넘은 스타머의 후임 총리로 자동 확정됐다. 버넘은 20일 스타머가 버킹엄궁에서 찰스 3세 국왕에게 사임을 공식 보고한 뒤 국왕으로부터 정부 구성 권한을 위임받아 영국의 제59대 총리로 정식 취임한다. 지난 6월 보궐선거를 통해 하원에 복귀한 지 단 한 달 만에 다우닝가 10번지 총리실에 입성하는 역대급 '초고속' 정권 교체다.

앤디 버넘 영국 하원의원이 7월17일(현지시간) 영국 새 총리로 선출됐다. AFP연합뉴스
올해 56세인 버넘 대표는 카리스마 있는 이미지와 탄탄한 지방행정 경험을 두루 갖춘 인물이다. 리버풀 노동자 가정 출신으로 15세에 노동당에 입당한 그는 17년간 하원의원으로 활동하며 토니 블레어와 고든 브라운 내각에서 문화부·보건부 장관 등을 지낸 베테랑이다.
버넘은 6월22일 스타머가 지난 5월 열린 지방선거 참패 등으로 전격 사임 의사를 밝힌 직후 “국민은 경제 성장과 생활비 부담 완화, 공공서비스 개선, 주거 안정, 미래 세대를 위한 기회 창출 등에서 실질적인 변화를 원한다”며 “국가를 쇄신하는 긍정적인 과정을 만들겠다”고 밝혀 사실상 출사표를 던진 바 있다.
리버풀 교외의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난 버넘은 15살에 노동당에 가입했다. 케임브리지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으며 인디밴드와 축구 애호가이다. 20대 시절 의회 연구관, 의원 보좌관을 지내다가 2001년 31세 나이로 하원에 처음 입성해 17년간 하원의원을 지냈다. 버넘은 대학 시절부터 교제해온 네덜란드 출신 마리프랑스 판힐과 2000년 결혼했다. 슬하에 아들 지미와 딸 로지, 앤마리 등 1남 2녀를 두고 있다.
버넘은 2017년부터 9년 간 그레이터맨체스터 시장을 지내며 런던 중심 정치에 맞서는 행보로 ‘북부의 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당시 보리스 존슨 보수당 정부가 충분한 재정 지원 없이 맨체스터에 강력한 봉쇄 조치를 추진하자 “런던 엘리트들이 북부 노동자들의 생계를 희생시키려 한다”며 공개적으로 반발해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시장 재임 기간에는 ‘기업 친화적 사회주의’를 내세워 일자리 창출을 북부 평균의 두 배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고, 2024년 지방선거에서는 63%의 득표율로 3선(選)에 성공하며 정치적 입지를 더욱 굳혔다.
다만 총리 도전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영국에서는 집권당 대표가 되려면 현직 하원의원이어야 하지만, 버넘은 시장 취임 당시 의원직을 내려놓은 상태였다. 이에 노동당 소속 조쉬 사이먼스 의원이 중앙 정치 복귀를 돕기 위해 의원직을 사퇴했고, 버넘은 지난 6월 치른 메이커필드 보궐선거에서 노동당 단일 후보로 출마해 55%의 득표율로 당선되며 웨스트민스터(중앙 의회)에 복귀했다.
이후 노동당 하원의원들의 폭넓은 지지를 확보한 버넘은 단독 후보로 당 대표에 선출되며 별다른 당내 경쟁 없이 총리직에 오르게 됐다. 그는 하원에 들어온 뒤 약 한 달 만에 총리실에 초고속으로 ‘무혈 입성’하게 됐다.

영국의 새 총리(노동당)로 확정된 앤디 버넘 하원의원이 7월17일(현지시간) 런던에서 열린 '노동당 특별회의'에서 아내 마리프랑스 판힐과 포옹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앞으로 버넘은 노동당 정부의 새 얼굴로 경제 회복과 생활비 위기 완화, 공공서비스 개혁 등을 최우선 과제로 안고 국정 운영에 나서게 된다. 버넘은 스타머보다는 왼쪽, 강경 좌파였던 제러미 코빈 전 노동당 대표보다는 오른쪽에 있는 ‘온건 좌파’로 꼽힌다.
다만 정치권에서는 높은 국가부채와 저(低)성장, 생활비 위기, 미국의 국방비 증액 압박, 이란 전쟁 비협조로 경색된 대미(對美) 관계 등 구조적 난제로 인해 버넘의 앞날은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또 그가 정작 중앙 정치 무대에선 제대로 검증받은 적 없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반면 중앙 정치의 극심한 파벌 싸움에서 벗어나 있던 덕분에 당내 여러 계파로부터 거부감 없는 '구원투수'로 추대될 수 있었다.
버넘 대표는 중도 실용주의 노선에 치우쳐 고유의 색채를 잃었던 노동당의 정체성을 재정립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이날 당대표 취임 연설을 통해 "1980년대 이후 정치권력은 지나치게 중앙집권화되었고 경제는 민영화의 폐해를 겪었다"며 '선명한 노동당' 비전을 공언했다.
경제 구조 개혁, 공공 통제력 강화, 재산업화 등을 통해 나라 전역의 성장을 고르게 촉진하겠다는 포부다.
주택, 교통, 교육 등 민생과 직결된 행정 권한을 지방으로 과감히 이양해 지역 맞춤형 발전도 예고했다. 런던 중심축을 탈피해 맨체스터에 제2의 총리실인 '북부 총리실'을 설치하겠다는 파격적인 공약도 전면에 내걸었다.
다만 세금 인상 반대 등 기존 노동당의 총선 공약과 현 내각의 이민 제한 기조는 그대로 유지하며 현실적인 재정 규칙은 준수할 방침이다.
당 안팎의 기대감 속에서도 우려의 목소리는 존재한다. 전임 스타머 총리가 오랜 기간 예비내각을 이끌며 국정을 준비했음에도 난항을 겪었던 반면 버넘 체제는 준비 기간이 짧아 중앙 무대에서의 정책 검증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현재 영국이 직면한 경기 성장 둔화와 빈약한 공공 재정 압박, 좌우 포퓰리즘의 공세 속에서 '북부의 왕'이 과연 고사 위기의 영국 경제를 살려낼 수 있을지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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